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문단 편집) === 스마랑, 메단, 남술라웨시 === 인도네시아의 제3도시 반둥과 다른 대도시인 [[스마랑]], [[메단]], [[마카사르]]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자카르타 및 수라바야와 조금 다른 양상으로 인도네시아군의 후퇴와 영국/네덜란드의 점령이 이루어졌다. 이 중에서 스마랑을 제외하면 대규모 전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우선 스마랑에서는 1945년 10월 15~19일 인도네시아 민병대와 잔류 일본군 간 전투가 벌어졌고 여기서 일본군이 승리해[* 인도네시아군 전사자 약 2천 명, 일본군 전사자 150~850명, 일본군 실종자 231명] 스마랑의 관할권은 그대로 10월 19일 스마랑에 진입한 영국군에 인계되었다. 이후 영국군은 귀환한 네덜란드군에 스마랑을 넘겼다. 수마트라의 최대 도시 메단에서는 1945년 10월 9일 네덜란드-영국 연합군이 도시로 진입해 인도네시아군과 전투를 벌였다. 12월 초까지 양측은 도시를 부분적으로 점유하고 대치했지만 12월 중순부터 전투가 격해졌고 1946년 4월 결국 인도네시아군은 패배해 도시를 내주고 후퇴해야 했다. 동인도네시아의 주요 거점 마카사르를 비롯한 남술라웨시에서도 비슷하게 처음에는 현지 독립파가 어느 정도 지역을 장악했지만 1946년 4월 초까지 귀환한 네덜란드군이 독립파에게서 행정 기구를 대부분 빼앗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북수마트라와 남술라웨시에서는 산발적인 독립파의 게릴라 항쟁이 이어졌고 특히 남술라웨시에서는 1946년 12월이 되면 네덜란드가 통제 가능한 지역은 마카사르시 영역 정도뿐인 상황으로까지 가기도 했다. 이에 네덜란드는 비정규전 전문가 라이몬트 피에르 파울 베스테를링(Raymond Pierre Paul Westerling, 1919 ~ 1987)이 이끄는 특공대를 투입해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저항군에 대한 잔혹한 즉결 처형을 포함하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남술라웨시를 안정화했다. 베스테를링의 특공대는 적어도 약 1,500명의 인도네시아인을 살해했다. 1,500명은 네덜란드 역사학자의 추정치이며 인도네시아 측은 이후 희생자 규모를 15,000명으로 주장했다가 40,000명으로 수정했는데 40,000명이라는 수치는 과장되었다는 비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